중용을 읽다 보면 공자가 "먹고 마시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맛을 아는 이는 드물구나"하고 탄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의 문명이 음식 문제에서 시작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이 음식을 먹는 목적이 더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맛을 위한 것일 때,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쓰이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 가운데 하나가 소금이다. 소금의 성분인 나트륨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성분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소금은 맛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을 장기간 저장하는데에도 꼭 필요했고,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교역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급여를 뜻하는 영어 단어 salary는 "병사들이 소금을 살 수 있도록 지급한 수당"이라는 의미인 라틴어 단어 salarium에서 온 것이다. 그가 그렇게 좋아했던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츠부르크도 소금 성이라는 이름처럼, 소금 생산지였기 때문에 소금 무역이 도시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소금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많이 먹는 것은 물론 건강에 해롭다. 한국에서는 나트륨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어서 언론이 크게 다루는 것을 보았다. 작년 말에는 소금 중독으로 의붓딸을 숨지게 한 살인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것. 진정으로 그 맛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누구는 영 싱겁다고 그러는데, 누구는 짜다고 난리를 부린다, 또 어떤 누구는 간이 참 잘 되었다며 맛있게 먹기도 한다. 음식의 맛을 컴퓨터로 수학 문제를 풀듯 정확하게 잴 수 있다면, 또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그런 것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기 입맛만을 고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아직 사람들 앞에 서서 내 요리를 할 자신은 없다. 내가 한 것은 그래서 누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요리를 해동시키고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양념을 좀 하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물론 그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요리를 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그 맛은 어떤 맛이었을까, 지금 그 맛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기다리고, 또 시행착오를 겪고….

아직은 내가 요리를 할 자신이, 용기가 없다고는 했지만 여기서도 내가 고르고 양념을 했으니 어느 정도 내 입맛이 드러나기는 한다. 하지만 바라건데 내가 느낀 그 맛을 다른 사람들도 좀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느릅나무길 다락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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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0) 2013.04.03
Posted by Fleur de Sel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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